파인(巴人) 김동환론

2018.12.07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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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료설명


파인(巴人) 김동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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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목차 및 본문내용


파인(巴人) 김동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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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가의 생애와 활동

파인은 1901년 두만강을 끼고 북간도와 마주한 국경과 멀지 않은 함경북도 경성에서 부친 김석구와 모친 마윤옥 사이에서 태어났다. 가족사적으로는 중시조인 매월당 김시습의 18대 손으로 그의 문사적 맹아를 추측해 볼 수 있다. 부친 김석구는 함일학교의 경영에 참여할 정도로 경제적 여유도 있고 시대적으로 일찍 깨어 있던 것으로 보이나 한일합방이 일어나자 그 울분으로 그의 옥토 1만여평을 함일학교에 희사한 후 가사를 등지고 북간도와 러시아 일원을 떠돌았으며 혁명운동에 투신한 것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때문에 김동환은 고학으로 공부를 해야 했다. 중동학교 4학년 재학중이던 1920년에 학생들이 집필자이자 편집자인 잡지 『학생계』현상공모에 그의 시가 1등으로 당선되었는데 이 시기에 이미 상당한 습작 과정을 거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일본 도요대학 문화학과에 진학하여 고학하였으며 관동대지진이 나자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하였다. 일본 유학시절 재일조선노동총연맹 중앙집행위원으로 일하는 등 노동운동에 간여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는 러시아혁명이 성공(1917년)한 직후로 자유주의적 분위기가 팽배했던 때로 사상적으로 문화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귀국한 이듬해에는 양주동이 주도한 『금성』 1920년 초반의 시 전문동인지. 1923년 11월 10에 창간되어 1924년 5월 23 일 통권 3호까지 발행되었다. 1, 2호는 유엽이 발간하였고, 3호는 양주동(梁柱東)이 발간하였다. 「금성」이라는 제호는 여명을 상징하는 샛별의 뜻과 사랑의 여신 비너스의 뜻을 합한 것이다. 양주동의 프랑스 상징파 시인 보들레르와 베를레느의 작품 번역 소개, 백기만‧양주동의 타고르 시 번역, 손진태의 투르게네프 산문시초 등이 보인다.

지에서 시 「적성을 손가락질하며」로 문단에 첫발을 내디뎠고 『경성일일신문』과 『동아일보』기자로 언론에 투신하였고 『시대일보』와 『조선일보』기자로 활동했다. 1925년에 그의 대표작인 장편 서사시 「국경의 밤」과 『승천하는 청춘』을 발표하여 문단에 확고히 자리매김을 하였으며 계급주의 노선을 내세우는 카프에 참여하였다가 1920년 후반에 이탈하였다. 카프에서 이탈하며 카프와는 반대편에 위치한 이광수, 주요한등 민족주의자들과 교류, 친분을 쌓았으며 이들과 함께 1929년 『삼인시가집』을 내는 변신을 하였다. 같은 해 조선총독부가 총독부 출입기자들에게 제공한 촌지를 밑천으로 시작한 잡지 『삼천리』가 기대를 뛰어넘는 성공을 거두며 출판인으로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대중종합잡지를 표방한 『삼천리』는 김동환에게 잡지편집인으로서의 명예와 사회, 문화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칠 수 있는 확고한 기반을 제공하였다. 반면 그를 20년대 건강한 의식과 시어로 무장한 시인에서 가벼운 소품류의 민요시나 애상적 서정시를 쓰는 시인으로 변모케 하였고 현실순응적인 잡자의 편집과 경영방향으로 인해 친일의 길로 접어들게 하였다.

1940년대에 접어들면서 저항적이거나 민족주의적인 김동환의 면모는 자취를 감추고 친일의 길을 걷는다. 1942년 『삼천리』의 제호를 『大東亞』로 바꾸고 일제의 침략적 군국주의를 설파하였다. 김동환은 白山靑樹로 창씨개명을 하며 일본제국주의를 칭송하는 시를 쓰고 학병에 참여할 것을 권하는 강연에 나섰으며 친일단체에 두루 참여하는 굴절된 모습을 보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후 1950년 7월 23일 납북되었고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중앙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집단수용소로 추방된 후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었다.



2. 작가의 시적세계



김동환의 시세계는 크게 3기로 구분할 수 있다.

제1기는 1924년부터 1929년까지로 문단 데뷔에서부터 잡지『삼천리』를 발행하기까지의 기간이다. 이 시기에 파인은 대표작 「국경의 밤」을 비롯한 2편의 장편서사시와 북방을 배경으로 한 장엄한 북방시편들을 발표하였다. 스스로 경향파 시인을 자처하며 경향파를 옹호하는 평론들을 발표하여 프로문학의 중심에 섰다가 20년대 후반 카프에서 이탈한 시기이며 동시에 민요에 눈을 뜨고 민요가락에 향토적 서정을 담으려 한 시기이기도 하다. 오세영은 이 시기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그가 민족의식을 고취한 몇 편의 작품을 썼다는 점’을 들으며 ‘파인의 문학생애에서 가장 애국적인 문학활동이 이루어진 시기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김동환의 문학세계의 중요한 작품과 주목해야 할 문학적 변화는 사실상 이 시기에 모두 집중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제2기는『삼천리』의 발행인이 되는 1929년부터 해방까지이다. 이시기 파인은 잡지발행과 경영에 전념하면서 1920년대의 격정적인 모습과는 달리 개인적 서정에 침잠하면서 민요시와 순수 서정시 창작에 몰두하였다. 일제의 식민통치가 매우 가혹해진 1940년대 들어서는 「총, 1억 자루 나아간다」, 「비율빈 하늘 위의 일장기」등의 노골적인 친일시와 수필, 기행문 등을 발표하며 친일의 길에 적극 협조하는 훼절의 길을 걷는다. 1942년에는 서정시집 『해당화』를 출간했다.

제3기는 해방에서부터 1950년 납북까지 기간으로 여전히 서정적 민요시들을 주로 발표하였으며 일제가 패망하자 애국시 몇 편을 발표하였다. 반민특위에 의해 공민권이 제약되는 상황 속에서 정중동하며 재기를 노렸으나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7월 납북됨으로써 파인의 문학적 생애는 종지부를 찍게 된다.



3. 문학적 특성



1) 북방의 정서가 담긴 서사시

그는 한국 현대시에 북국적(北國的) 정서의 강인한 맥박과 서사시의 유장한 가락을 펼쳐 보여준 선구적 시인의 한 사람이다. 일찍이 주요한은 김동환의 시를 ‘북국 정서’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그만큼 김동환 시가 지닌 두드러진 특징은 북국적인 정서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이러한 북국적인 정서는 시 ‘국경의 밤’, ‘선구자’, ‘물결’, 등 초기시를 관류하는 중요한 특징이다. 이렇게 볼 때 파인의 초기 시편들은 대체로 추위와 어둠으로 요약되는 북국의 모습과 정서를 배경으로 하여 현실의 비극성을 드러내면서, 이에 대한 극복 의지를 표출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그는 북방적 강인함과 매서움을 바탕으로 그의 시는 일제하 동포들의 참담한 생활상을 포착하여 민족적인 설움과 고통을 노래하였다.



제1부[1]장

아하, 무사히 건넜을까,

이 한밤에 남편은

두만강을 탈없이 건넜을까?



저리 국경 강안(江岸)을 경비하는

외투(外套) 쓴 검은 순사(巡査)가

왔다 - 갔다 -

오르명 내리명 분주히 하는데

발각도 안되고 무사히 건넜을까?



소금실이 밀수출(密輸出) 마차를 띄워 놓고

밤새 가며 속태우는 젊은 아낙네,

물레 젓던 손도 맥이 풀려서

파! 하고 붙는 어유(魚油) 등잔만 바라본다.

북국(北國)의 겨울 밤은 차차 깊어 가는데.



[2]장

어디서 불시에 땅 밑으로 울려 나오는 듯,

어어이! 하는 날카로운 소리 들린다.

저 서쪽으로 무엇이 오는 군호(軍號)라고

촌민(村民)들이 넋을 잃고 우두두 떨 적에,

처녀(處女)만은 잡히우는 남편의 소리라고

가슴 뜯으며 긴 한숨을 쉰다.

눈보라에 늦게 내리는

영림창(營林廠) 산재실이 벌부(筏夫) 떼 소리언만.

- 국경의 밤(19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