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역사와 문화-광개토대왕

2012.09.25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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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료설명


광개토대왕비... 현재 중국 집안시, 기원전 57년에 개국한 고구려가 400여 년 동안 수도로 있었던 곳이다. 이 곳에 광개토대왕비가 있다. 여기에 1600년 전 고구려 사람들이 직접 새긴 그때의 기록 1775자가 적혀 있다. 그 중 선조왕 모두와 자신의 무덤의 안전을 위해 묘위에 비석을 세우고 왕릉을 지킬 "수묘인제도" 를 비석에 새김으로써 착오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라는 내용이었다.

2. 목차 및 본문내용


광개토대왕은 왜 왕릉을 지키는 수묘인에 대해 유언을 남긴 것일까? 그 이유는 15대 미천왕의 무덤 서대묘.. 이 서대묘는 도굴을 당했었다. 또 중국의 모용황에 의해서 시신까지 탈취당하는 능욕때문 이었다.

왕실과 국가의 위엄을 알리기 위해 필요했었던 수묘제 그런데 이 수묘제의 규모가 330가에 달했다. 이 당시 고구려 왕릉의 수묘인은 보통 20가에 불과했었다. 이에 비해 330가는 엄청난 규모인 것이다. 비문에 의하면 수묘인은 구민과 신래한예로 나눠지는데 구민은 요동지역에서 뽑은 사람들이고 신래한예는 백제인들이다. 백제인들로 해서 고구려의 정복사업과 성과를 피부로 느끼게 하고 넓어진 영토와 국력을 느끼게 해서 자부심을 갖게 하는데 큰 의미가 있다.

광개토대왕이 왕릉을 지킬 수묘인으로 지정한 사람들은 자신이 데려온 정쟁포로들 이었는데 어느 나라와 싸워 어떤 전과가 있을까? 중국의 여러 부족들이 밀고 밀리는 영토 다툼이 치열한 서북쪽 요동의 경우 광개토대왕의 군대가 요하를 건너 진격하고, 북쪽으로는 숙신 동부여를 복속시켰다. 광개토대왕이 왕위에 즉위한지 5년째 되던 해 요동벌판 초원지대와 거대한 의무려산을 넘고넘어 현재의 내몽고 자치주 시라무렌강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을 광개토대왕이 지배했다